19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이 불을 뿜고,
미국 대사관 코앞에서 반미 시위가
매몰차게 울려 퍼졌으며, ‘조국 통일’
이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쏟아내던
시대였다
그 시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시위의 한복판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손을 흔들며 독재 권력에 대응했던
기억의 한 자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권이 아닌 학생이었다고
할지라도 생생하게 각인된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 만 21세로 아직은 앳된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방북해 북한 주민들로부터
환영받는 모습은 남북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녀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대표로 참가한
것이었다.
임수경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 때,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대표로 제13차
‘세계 청년 학생 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와 독일(서독)을 거쳐 평양으
로 갔다
45일 동안 북한에 머무르며 자유 분방하고
신념에 가득찬 언행으로 남한과 북한
사회에 큰 충격과 파문을 던진 임수경은
북한 청년학생 대표와 함께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백두산에서 판문
점까지 통일염원 행진을 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뚜렷한 소신을 보여주었다
귀환길에 동행하기 위해 파견된 당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문규현 신부와 함께
8월 15일, 분단 이후 민간으로서 최초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온 임수경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5개월 동안 옥살
이를 했다
통일을 이루어 어린이들이 통일 조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임수경은 어린이들과 함께 통일을 꿈꾸고
생각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참 좋다 통일 세상을> 썼다고 한다
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앞으로 평화와 통일에 관한
일을 계속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임수경의 방북으로 하루아침에 통일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토의 땅 북에 작은 통일의 꽃씨를
뿌렸던 소중한 역사였다.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오늘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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